괴물의 탄생
괴물의 탄생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 4 | 우석훈 저 | 개마고원
책읽은 시간보다 가방에서 이동된 시간이 더 길어.. 너덜너덜해진 '괴물의 탄생'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정말 무지하구나. 대학도 나오고, 그래도 금융권에 다닌다는 인간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의 시리즈도 다 읽고 경제학원론도 좀 공부하고 그래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숫구치는 것도 잠시.. 이거 한권 읽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수님 강의를 눈치 안보고 편안하게 도강하는 느낌의 책..
물론 교수님도 사람이다 보니 사견이 많이 들어가 있긴 하나, 그 사견이 참으로 논리적이고..
나의 사상과 일치하는 듯하다.
사건과 현상은 여러 시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그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내가 하는 것.
여러 시각을 만날 기회를 만들고, 여러 정보와 시각을 찾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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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강의 : 자본주의가 가장 아름다웠던 18세기
마르크스는 경제가 계속해서 정체상태가 오는 게 아니라, 그 시점 어디에선가 사회주의로의 전환 - 마르크스는<자본론>에서 그렇게 애기하지 않았는데, 후대에 이 전환을 바로 '혁명'이라고 브르게 됩니다-이 오게 되고, 그렇게 경제양식이 바뀌어서 계속 성장하게 될 거라고 말한 셈이죠. 그리고 그가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정학파를 비판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다음 단계로의 경제 시스템의 전환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과, 그것은 바로 그들이 부르주아 경제학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의 법칙'을 요즘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마지막 시기에 경제성장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로의 구조 전환을 통해 성장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고, 이를 보통 ' 사회주의적 생산력주의'라고 부릅니다.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마지막 순간을 정체 상태로 본 것은, 애덤 스미스의 계급적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핵심이었던 셈입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여기에서 추론된 것입니다.
세번째 강의 : 위기 그리고 또 위기,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등장
- 애덤스미스 : 국가와 기업이 일정한 긴장을 가지면서 구성
- 마르크스 : 국가가 아주커져서 기업, 즉 생산의 단위를 자신의 영역 안에다 완전히 포함시키는 것, 국가가 가격을 스스로 결정하고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도 결정
- 케인스 : 국가의 영역은 좁지만 기업의 상당부분을 좌지우지하면서 일종의 공공부문을 형성하고, 기업은 자신의 일부를 국가에 양보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문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
- 신자유주의 : 기업의 영역이 아주 길쭉해져서 사회의 상당부분을 직접 담당하게 되며, 국가의 영역에도 상당히 파고들어 가는 모습. 아마 현재의 미국모습
네번째 강의 : 국가와 시장의 경쟁 그리고 제 3부문일반적으로 경제사상사에서 시기를 분류 할 때 중요한 기점들이 몇개 있습니다. <국부론>이 등장한 1776년, <자본론>이 등장한 1867년, 그리고 <일반이론>이 서술된 1936년 입니다. 그리고 흔히 경제원론으로 불리는 표준적인 교과서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할 세 사람을 더 추가한다면, '부분균형'의 앨프레스 마셜, '일반균형'의 레옹 왈라스, 그리고 이 두사람의 이론틀에 케인스까지 포함해서 '신고전학파 종합'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케인스주의학자들과 이론적 대척점을 만들어낸 폴 새뮤얼슨일 것입니다.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기타 이론들로 구성된 현재의 2학기 분량의 경제원론 체계를 만든 사람이 바로 새뮤얼슨인데, 그가 1947년에 저술한 경제학 교과서 <경제분석의 기초>는 이후 거의 대부분 표준경제학의 기본을 형성하게 됩니다. (흔히 '맨큐의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책부터 조순의 <경제학원론>까지, 전부 새뮤얼슨의 기본 체계를 부분 수정한 것들 입니다.)
68혁명 : 프랑스 대학생들의학내 시위에서 촉발되어 결국 미국의 베트남전과 소련의 스탈린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운동으로 발전한 혁명. 1968년은 경제 사이클상 하강 국면에 들어가기 직전의 호황기였는데, 프랑스 '68혁명'의 결과 노동자들에게 분배를 적극적으로 늘리면서 '영광의 30년' 호황기가 1974년까지의 장기호황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분배가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첫번째 실증적 사례로 평가된다.
1968년 이후로 노동자에 대한 분배가 더욱 강화되면서 이른바 케인스식 소비 승수 효과 multiplier effect 가 발생하여 역동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분석.
1970년대까지 "그래도 사회주의보다는 시장경제가 더 낫지 않은가?"라고 소박하게 외치던 신고전학파의 학술적 논의는 1980년대 이후 완전히 사라지고,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전환경제(EIT: Economy in Transition)로 분류되기 시작한 이후, 순전히 대기업들의 이윤창출에만 기여할 게 뻔한 조치들이 전세계에서 진행되었지요. 아직 부자 나라들의 OECD 에 가입하지 못했음은 물론이요. 최소한의 국민경제의 기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들의 눈으로 이러한 흐름을 본다면, 장하준이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한 독일 경제학자 리스트의 말대로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의 눈으로 본다면, 공공성의 붕괴에 대한 사회적 저지의 흐름이 되겠지요. 케인스 이후 자본주의 방식으로 구성된 국민경제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상을 겨우 확보하게 된 국가가 199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기업에 밀리지 않았던 이유는-하나로 환훤하기는 어렵지만-국가와 대기업 외의 또 다른 국민경제 부분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다리 걷어차기 :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의 산업경쟁력을 확보한 후, 다른 후발주자들이 등장하면 보호무역 대신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독일 경제학자 리스트가 1841년 출간한 <정치경제학의 국민적 체계>에서 이런 현상을 두고 사용한 용어다. 그는 유치산업 보호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산업적 성공을 거둔 영국이 후발국인 독일 등에 대해선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하준을 통해 이용어가 알려졌다.
여섯번째 강의 : '삼성공화국'의 등장과 거듭된 시장의 승리
삼성에서 돈을 받지 않아도 이른바 '알아서 기는 현상', 법조계에서 삼성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
단순히 삼성이 관리를 했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법조인이 동시에 부패했다기 보다는 좋은 국민경제에 대한 시각을 법조인이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시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 제가 경험한 바로는 다름 아닌 한국의 관료집단입니다. 이를 김용철 변호사가 해석한 것처럼 '관리에 의한 부패'로 볼 수도 있지만, 건전한 국민경제에 대한 상식수준에서의 시각을 한국의 법조계가 가질 기회 없이, 수출경제에 대한 환상이 너무 강해졌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미국 자본주의를 지금의 튼튼한 자본주의로 만든 요소를 거론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세계를 지배할 것 같았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사에 대한 대법원의 해체 결정(1911년)과 AT&T 반독점 제소사건, 그리고 2001년 엔론사의 분식회계에 의한 파산결정과 같은 사건들이지요. 그런데 이는 독점과 기업 내부 부정에 대하 사법부의 역할을 세웠던 사건들입니다. 이렇게
건전한 자본주의의 형성에서 사법부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특히 이 사법부를 잘 활용해서 초기 자본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로 확보한게 바로 미국 경제모델이지요.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불행하게도 삼성이라는 존재로 인해 사법권이라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된, 아무도 사법부의 결정을 믿지 않는 불행한 시장경제 모델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국민경제의 운용에서 기업이 정부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라 부르는데, 한국에서 이러한 기업의 승리는 중남미 국가들에서와는 양상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노무현 시기에 한껏 부풀려진 지방토호와 땅부자라는 약간 독특한 모습들이 개입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시장을 통해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선 낮은 이자율을 작동원리로 삼아 토지가 주는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특수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서울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한 지독스런 중앙형 시스템이란 요소가 덧붙기 때문에, 노무현을 승계한 이명박은 단순히 신자유주의 혹은 강화된 신자유주의와 같은 개념으로는 잘 설명하기 고약한, 변태적 요소가 있습니다. 대운하를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이런 것은 신자유주의 역사에서도 상상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쓰자면 지금의 이명밥 정권은 '변태 신자유주의' 혹은 '토목형 신자유주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강의를 마치면서 한마디 보태자면, 삼성이 지금의 불행했던 기억 속에서 정상적인 기업으로 전환하여 국민들이 두려워하거나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기업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기업이 되기를 저도 바랍니다.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라는 칭송받는 미국에서 때때로 다국적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가지고 소비자를 속이며 횡포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삼성의 경우와 같이 국정운용 자체를 한 기업이 쥐고 흔드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어떤 거대 기업이 지금까지 삼성이 했던 것처럼 미국에서 그런다면 과연 남아날 수 있을까요? '정상 기업', 그냥 삼성이 미국과 유럽에서 하는 정도로만 한국에서 한다면 멀지 않아 삼성이 정상적이지만 진정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덟번째 강의 : 괴물의 탄생, 실종된 제 3부문와 파시즘
한국은 노무현과 이건희가 그렇게 "2만 달러만 되면"이라고 했던 그 상태를 외형적으로는 완성하게 되지만, 내용적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체질의 국민경제가 돼버렸습니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버틸 것인가, 즉 시간에서의 '지속성 durability' 이나 생태적의미에서의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과 같은 질문을 마주하면 상당히 심각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시기에 한국에서 생겨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비정규직의 여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취업한 여성들은 32세를 기점으로 급격히 임금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비정규직에서 더욱 심해져서, 같은 비정규직에서 여성들은 남성들 임금의 65.4% 정도만 받게 됩니다. 최근의 노동경제학과 '젠더 이코너믹스'라 부르는 경제학 분과에서는 이런 성별차이의 문제를'핸디캡'이라는 개념으로 많이 애기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핸디캡 개념을 한국이라는 공간에다 적용해봅시다.
- 지방에 사는 사람들 : 서울에 살던 사람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아침에 밥먹고 나와서 학교에 오면 되지만, 지방에 살던 대학생들은 전혀 다른 조건에서 학생으로서의 삶을 꾸려나가야함.
- 장애인 : 차별없이 경제활동을 하기에 대단히 힘듦
여기에 나이라는 변수, 그리고 마지막 고절이라는 변서.. 이런 여러가지 요소를 '약한고리'라고 불러봅시다.
만약 어떤 이가 이십대이고, 여성이고, 지방에 살고 있는데, 거이에 고졸이고, 또 아주 약간 다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해봅시다. 자, 이 사람의 삶은 어떨 것이고, 임금은 어느 수준일지, 도대체 가늠이나 되십니까? 아니, 이정도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나 있을까요? '약한고리'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다섯가지나 가진 이사람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과연 어떻게 느껴질까요? 아마도 지옥 아닐까요?
반대로 핸디캡을 빼면서 생각해봅시다.
남성이고, 서울에 살고, 기업으로 치면 민간업체의 부장이나 이사, 혹은 정보의 국장급 이상인 사람이겠지요. 대부분 소위 SKY 대학을 졸업했겠지요? 거기다 고등학교를 경기고나 경복고 혹은 서울고를 나왔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러한 두개의 극단적인 축으로 2004년 이후에 한국이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자, 같은 생각을 이제 공간을 바꾸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학문적인 접근을 떠나 아까 제가 제시했던것과 같은 이십대 고졸로서 지방에 사는 여성의 경우, 뉴질랜드나 캐나다에 있으면 행복할 수 있고, 스웨덴에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고, 만약 스위스에 있다면 아마 구청에서 지원하는 지역봉사단체나 사회적 기업 같은 곳에서 연봉 4000만 원 이상의 임금을 받을 확률이 90%는 될 겁니다.
쉽게 말해 좋은 경제란, 아주 부자는 아니더라도 그 시절에 사회가 '성실'이라고 말한 것들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의 입에서 "죽겠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국민경제 아니겠어요?
한국자본주의 는 '괴물'이 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십대 초반 고졸 출신의 여자이자 장애인, 그녀에게 한국은 더이상 조국도 아니고, 고향도 아닙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출산을 거부하고, 한국의 좌파든 우파든 "여성들이여, 아이좀 낳으시오"라며 국가주의를 들이대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따스한 자본주의, 혹은 인간적 자본주의 좀 투박한 용어로 복지국가 등등 자본주의가 나름대로 사람들이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보자는 노력들이 2005년 어디쯤의 한국에서는 무너져 버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경제'라는 용어 한마디 외에는 할 줄 모르는 좀비들처럼 변해버립니다. 사람들은 좀비처럼 경제만 외쳐대고 있지만,실제로 철저히 경제적 합리성으로 자신에게 도움되는 것만 선택하는, 지독한 경제적 인간과 시장적 원칙만이 지배다는 상황이기라도 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손해 보는 데도 지지하는 행위, 예를 들면 세입자가 뉴타운 개발을 지지하거나 땅도 없는 소작농이 지방토호들이 군수들의 땅값 올리기 개발 정책을 지지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기업의 노동유연성 정책을 지지하거나 하는 해위들 '경제적 합리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 입니다.
아홉번째 강의 : 한국 경제의 대안에 임하는 자세 - 고용, 공공성, 생태문화적 자치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
열번째 강의 : 사교육 해체와 교육문제의 대안
물론 사람들이 자기 돈을 내고 교육을 받겠다는데 원론적으로 이를 막기 어렵지요. 지난 10년 동안 이 '교육의 자유'라는 권리를 위해 한국의 중산층들은 소득의 20~30%를 기꺼이 교육에 지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이 상황은 한국 특유의 학벌사회와 소위 SKY대학 중심의 경제 엘리트 재생산 구조, 여기에 서울 중심주의까지 결합되어 지금의 '무한 지출'게임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지요.
이 논리는 - 개개인에게 유용한 진리가 집단에게는 전혀 유용하지 않다는-'구성의 오류 fallacy of composition '라는 논리증명으로써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야구장에서, 누군가 더 잘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결국 모든 사람이 다 일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일어서면 결국 처음에 모두 앉아 있던 경우와 마찬가지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일어서서 게임을 봐야 하니까 나중에는 다리가 아프겠지요. 그리고 다리가 아픈게 싫어서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같은 돈을 내고 야구장에 들어왔는데도 게임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지요.. 이 상황은 사교육 열풍의 경우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말한 '천재 경제'는 한국에서 백성들이 눈물을 먹고 살 뿐입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1명이 10만명을 등쳐 먹는 아주 피곤한 중남미형 경제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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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들다.
책을 읽다가 기억에 오래 남기고 싶은 부분을 접어 놓고..
그것을 써 내려가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기억력이 쥐약인 나한테는 다시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니, 이정도야..
미처 써내려가지 못한 부분도 있는데.. 꼭 책을 읽었으면 한다.
저자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할 뿐만 아니라 대안 까지 제시하니.. 정말 대단하다. 대안이 정답인지 어쩐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럴듯 해보이긴 하더라. 한가지 확실한 건, 이나라에서 참 살기 힘들다는거..
아둥바둥 열심히 산다고 산다. 여유와 풍요는 언젠가 오긴 올까?
우리의 다음 세대도 같은 삶을 살게 하는게 부모로써 올바른 선택일까?
그저 시간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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